[로컬춘추] 가을 단상(斷想) ‘거친 손, 위대한 손’
[한국지방정부신문=안경환 편집주간] 입동이 가까워오니 날씨가 쌀쌀해지고 휘몰아치는 북풍에 만추의 낙엽이 어지럽게 나뒹군다. 마치 거센 세파에 내몰린 민초들 처럼...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어느 네거리 길모퉁이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문을 여는 조그만 구두 수선집이 있다. 그 수선집의 주인공은 말을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할아버지다. 비록 말을 못하지만 그는 솜씨가 좋아 고객들에게 항상 기대 이상의 만족을 준다.
다른 어떤 수선공처럼 구두를 닦고, 수리하고, 우산도 고치고, 가방을 고치느라 손은 오랜 세월에 굳은살이 박인 손은 검은색으로 염색되어 있고 지문은 닳아서 있는 듯 없는 듯 하다.
그 손은 바로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손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가난했던 한국경제를 오늘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시킨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의 손이다. 가진 게 없어도 몸을 불살라 자식들 먹이고 교육시켜 성공시킨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의 위대한 손이다. 새마을 운동으로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하며 십시일반으로 골목길 넓히고 홍수로 무너진 개천 제방을 다시 만들어 마을 공동체를 살린 자력갱생의 손이다.
남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했기에 다른 어떤 수선공들처럼 퇴근시간이 되었다고 고객을 헛걸음치게 하지 않는다. 소통이 잘 안되어도 구두를 수선하고 비용을 주고받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혹시나 고객이 이해를 못하면 간단하게 글자를 써서 의사를 전달해 준다. 옆에는 메모지와 연필이 항상 준비되어 있다. 고객을 만족시키려는 마음가짐이다.
우리 집은 수선할 물건이 있으면 집에서 조금 멀어도 늘 이 곳으로 가져간다. 금년은 예상치 못한 코로나19로 어렵지 않은 분야가 없다. 골목 식당이 어렵고 겨우 버티고 있는 자영업자들도 문 닫았거나 닫기 일보 직전이다. 모두가 때 아닌 보릿고개를 만나 숨을 깔딱이고 있는 지경이다.
지난 주말에는 오랜만에 접착부분이 벌어진 등산화를 수선하려고 이 수선집을 찾았다. 할아버지는 좁은 공간에서 의자에 기대 무료함을 달래며 쉬고 있었다. 역시 손님이 없었다. 일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영향이다.
등산화를 맡기고 괜히 미안한 마음에 옆 가게에 가서 음료수를 한 병 사가지고 와서 건네었다. 의외라는 듯 감사의 눈빛이다. 은행 일을 보고 되돌아오니 등산화가 잘 수선되어 있었다. 계산을 하려니 손사레를 친다. 그냥 가라고. 그냥 가라니? 무슨 소리냐고 5천원 권을 꺼내 드리니 3천원을 거슬러 준다. 다시 천원을 억지로 되돌려 주고 문을 나섰다.
집으로 오는 발걸음이 괜스레 가벼워졌다. 이게 사람이 살아가는 정이 아닌가? 사람이 먼저인 세상! 땀 흘려 일한 사람이 대우받고 잘사는 세상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아닌가? 착한 사람들이 어울려 동행하는 세상을 만들자. 오늘따라 바람에 나뒹구는 낙엽이 정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