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방정부신문=안경환 응우옌짜이대학교 대외총장] 베트남 응우옌푸쫑 총비서가 지난 7월 19일 오후 1시 38분 108군병원에서 서거하였고, 하노이 쩐타인똥(Trần Thánh Tông) 5에 있는 국립장례식장에서 7월 25-26일 양일간 국장 의례를 마치고, 7월 26일 15:00 하노이 마이직(Mai Dịch)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국장 기간은 전 국민 애도 기간으로 모든 관공서에는 국기인 황성홍기가 조기(弔旗)로 게양되었고 연예, 오락, 스포츠 행사는 모두 중단되었다. 국장 기간에 일부 구간에서는 교통이 통제되었다.
베트남 최고위 정치 지도자의 국장을 베트남에서 지켜보게 된 것도 생소한 경험인데, 가깝게 지내는 친구의 막내딸 결혼식을 연기한다는 통보를 받은 것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국장 마지막 날인 7월 26일이 막내딸 결혼식 날이라 이미 청첩을 내고 혼사 준비를 마친 호꽝러이(Hồ Quang Lợi) 대기자가 7월 21일 결혼식 연기를 통보해 온 것이었다. 7월 26일이 존경하는 총비서님 국장일이라 막내딸 결혼식을 1주일 연기하여 8월 2일 올릴 예정이니 양해바란다는 내용이었다.
결혼식 1주일 전에 연기한다는 것이 한국에서 과연 가능한 일일까? 연기 가능 여부를 떠나 호꽝러이 대기자의 성품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호꽝러이 대기자는 지난 45년간 베트남 언론 역사의 산증인이다. 그는 베트남 인민군 대좌 출신으로 인민군대신문 부편집장, 하노이머이신문 편집장, 하노이기자협회 회장, 하노이 시당 상임위원, ASEAN기자협회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1997년부터 출판한 저서와 평론으로 베트남 전국 언론인상 등 9개의 상을 수상한 바 있는 엘리트 언론인이다.
청소년기를 프랑스로부터 독립후 어려운 시기를 거쳐 미국과의 통일 전쟁을 치르면서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단결만이 나라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한 세대이다.
그는 만날 때마다 “기자위민(記者爲民)”을 강조한다. 기자는 국민을 위한 기자라야 한다는 것이 그의 평소 지론이다. 호찌민 주석의 작품 《옥중일기》에 “...현대시에는 마땅히 쇠가 들어 있어야 하고, 시인도 역시 ‘선봉’에 나설 줄 알아야 한다네...”라는 귀절이 있는 데, 호꽝러이 대기자야말로 “선봉”에 설 줄 아는 애국 언론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언론인 호꽝러이는 1956년 응에안성 꾸인르우(Quỳnh Lưu)현 꾸인도이(Quỳnh Đôi)면 태생으로 6형제 가운데 셋째 아들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농사일을 도우며 성장하였고,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대학교에 유학하여 외국어문학부를 졸업하고 프랑스문학을 전공했다. 그는 정확한 논평과 포괄적이며 국제적인 감각을 가진 언론인으로 명성이 높다.
호꽝러이 대기자는 최근에 14번째의 작품 《Người Trên Đường Đời: 생의 여정에서 만난 사람》(호꽝러이 지음/536쪽/350,000동, 하노이출판사)를 출판하여 베트남혁명언론의 날 99주년(1925.6.21.)을 기념하여 지난 6월 12일 하노이도서관 5층에서 출판기념회를 개최한 바가 있다.
베트남이 역사적으로 몽골 침략을 3차례나 물리치고, 프랑스군을 물리치고 독립을 쟁취하고, 미국을 상대로 싸워 통일을 완수한 것이 국민의 정신 무장없이 그냥 이루어진 게 결코 아니었다.
대기자의 막내딸 결혼식 연기는 생각할수록 호꽝러이 대기자다운 결정이었고, 대기자를 통해서 베트남 정신의 기저를 볼 수 있어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