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 응우옌짜이대학교 대외총장 “베트남 직접투자 확대, 한국어교사 양성, 1천명 한국문화체험 운영, 서울과 하노이에 “세종로”와 “호찌민로” 명명 한‧베 문화축제 개최, EBS와 베트남 TV방송국 연계 한국방송 전문 채널 운영“ 등 제안
[한국지방정부신문=정양기 기자] 한국군이 대한민국 사상 최초로 해외파병이 이루어진 날이 9월 11이다. 1964년에 파병이 되었으니 벌써 60년 전의 일이다. 베트남을 향하여 130명의 의무요원과 태권도 교관단 10명 총 140명이 출발하였다. 그로부터 1973년 1월 27일 파리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한국군이 철수하기까지 8년 6개월간 연인원 약 33만 명이 참전하였고 5,099명이 전사하였다. 베트남은 이제 한국과 매우 중요한 경제 협력국으로 부상하여 한국기업의 투자가 가장 활발하고 한국인 관광객이 베트남에 제일 많다. 이와 관련하여 베트남에서 가장 존경받는 한국인으로 베트남 영웅 호찌민 국가주석의 ‘옥중일기’를 한국어로 번역·출간하고 베트남 정부로부터 우호훈장을 받은 바 있는 베스트셀러 <오늘의베트남> 저자인 안경환 응우옌짜이대학교 대외총장(전 조선대학교 교수)과 11일 한국군 파병 60주년을 맞아 양국 관계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특별대담을 진행했다<편집자 주>
△ 베트남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요? 현재 하시는 일은?
= 제가 베트남과 인연을 갖게 된 지 올해로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74년도에 한국외대 베트남학과에 입학하여 베트남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종전이 되면 베트남을 재건하는 일을 할 수 있겠다 싶어서 베트남어과를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2학년 때인 1975년 4월 30일 북부 베트남을 중심으로 한 공산화 통일이 되면서 한국과 외교관계가 단절되어 버렸습니다. 그로부터 1992년 12월 22일 외교관계가 정상화 때까지 무려 17년 8월간 외교관계가 단절되어 베트남과는 인적 물적인 교류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다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1989년 당시 상공부 주관으로 시장개척단을 모집하였는데, 현대종합상사에 근무하고 있던 저는 베트남 파견을 자원하였고 호찌민시에 배치받아 그로부터 5년간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호찌민종합대학교(현재의 국립호찌민인문사회과학대학)교에서 외국인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베트남대학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회사를 떠나 대학에서 26년간을 후학을 양성하다가 2020년 조선대학교에서 정년하였습니다. 2021년부터 베트남 KGS국제학교 이사장으로 3년간 봉직하다가 현재는 응우옌짜이대학교에서 대외 총장을 맡아 베한국제대학교 설립 기초를 닦고 있는 중입니다.
△ 1992년 12월 수교 이후 한국과 베트남 관계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한국과 베트남 외교정상화 32년이라는 짧은 외교사에도 불구하고, 한·베 관계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달성하였습니다. 이러한 성과 뒤에는 두 민족 정치지도자들의 고뇌에 찬 결단이 있었고, 두 나라 모두 미래를 향한 새로운 관계의 정립이 필요했었습니다. 각각 다른 이념과 명분으로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적으로 싸웠기 때문입니다. 전후 통일 베트남은 경제개발이 필요했고, 우리는 새로운 시장이 필요했습니다. 베트남은 “투 꾸 반 머이(Thù cũ bạn mới)- 옛 원수를 새로운 친구로”, “쭈옌 투 타인 반(Chuyển thù thành bạn)- 원수를 친구로”, “켑 라이 꽈 크 흐엉 떠이 뜨엉 라이(Khép lại quá khứ hướng tới tương lai)-과거를 닫고 미래로 향하자”라는 입장으로 선회했고, 미래를 향한 큰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베트남은 미국의 무역 봉쇄와 전후 어려운 경제적 여건을 탈피하기 위한 묘안을 찾았는데, 1986년 12월 제6차 베트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도이머이” 정책을 채택한 것입니다. “도이머이”정책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탈바꿈하고, 외국인투자를 유치하여 경제를 발전시키자는 것입니다. 1992년 한국과의 외교 관계 정상화에 이은 1995년 미국과의 외교 관계 정상화로 이어진 국제관계의 발전은 한국기업에서 생산한 “Made in Vietnam” 제품의 대미 수출 확대로 이어졌습니다. 생산에 필요한 원부자재가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수출되어 교역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고, 베트남에서 생산한 삼성 제품의 수출이 베트남 전체 수출의 17.5%를 차지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한국과 베트남이 모두 누이 좋고 매부 좋듯이 공동번영의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이제, 베트남과의 교역 규모는 중국과 미국에 이은 세 번째 규모로 베트남과 굳건한 경제협력은 양국 발전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 올해는 한국군 파병 60주년 해입니다. 베트남 현지에서는 한국군의 파병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지요?
= 베트남은 항미전쟁 승전국이라는 자부심이 매우 강하며 “한국군 파병은 과거 일이며, 한국은 지금은 베트남 최대의 경제 협력국으로 ‘한강의 기적’을 모델로 삼아 ‘홍강의 기적’으로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연평균 5~6%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130명 규모의 이동외과병원 요원과 10명의 태권도 교관 총 140명이 1964년 9월 11일 부산항을 출발 9월 22일 사이공 항구에 도착하였습니다, 이후 붕따우에서 9월 28일 시무식을 갖고 업무를 시작하여 1973년 1월 27일 파리평화협정 체결로 그해 3월 23일 주월한국군사령부가 철수하기까지 8년 6개월에 걸친 파병의 역사를 기록하였습니다. 베트남 현지에서는 한국국 파병에 대한 재조명이나 언론보도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는 발전적인 미래를 위해서 과거의 문을 닫고, 과거를 거론하지 않는 베트남 사람들의 실용주의적이며 미래지향주의적인 사고방식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한국군 참전은 북한의 남침 위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민족 생존을 위해 주한 미군의 베트남 전환배치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 파병이었습니다. 숱한 전쟁을 겪은 베트남은 한국의 불가피했던 입장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상처가 아물어 가고 있는 마당에 잊으려는 과거사를 들춰내는 것에 오히려 못마땅해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은 항미전쟁 승전국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한국군의 참전에 대하여 잊고 싶은 과거를 들추어내고 싶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한국경제 발전의 기관사 역할을 한 박정희 대통령과 새마을 운동을 연구하는 기관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일부 시민단체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이라고 주장하고, 급기야 2023년 2월 법원(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은 한국 군인들이 작전을 수행하던 민간인에 총격을 가한 사실이 인정된다면서 베트남인에게 승소 판결을 했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 안타까운 일입니다. 국가의 명을 받고 참전한 참전용사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모독이라고 생각합니다. 반세기 전에 끝난 전쟁에서 입은 피해를 양심과 인도주의를 앞세워 스스로 보상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국익에 과연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베트남 지식인들도 그런 사람이 한국 사람이 맞느냐라고 반문하는 분이 있습니다. 학살이란 무고한 사람을 악의적으로 살해한 것을 말하는 것이고, 희생이란 불가피하게 일어난 사고인데, 민간인 피해를 조직적인 민간인 학살로 단정하거나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가 전혀 없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전쟁의 실체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에 민간인 피해가 어찌 없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베트남 전쟁은 상대가 군복을 입지 않아서 피아(彼我)를 구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전투가 이어져 불가피한 희생이 있었습니다. 과거의 문을 닫고, 과거를 거론하지 않는 베트남 사람들의 실용주의적이고 미래지향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존중해 재론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베트남에 원조를 확대하고 고엽제피해자 구제에 협력하는 등 포괄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부름을 받아 나라 위해 싸운 국가 영웅들을 학살자로 매도하는 것은 참전용사에 대한 명예 훼손이며 군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이적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응우옌짜이대학교 설립자도 한국군과 접전했던 베트남 인민군 출신으로 한국군이 용맹하고 강한 군대였다고 회상하곤 합니다. 그는 베한친선협회 부회장으로 한국을 배워야 한다고 앞장서는 분입니다. 저는 맹호사단 기갑연대 1중대 1소대 진지인 638고지에서 혈투를 벌인 소총병 출신 김영두 영웅이 쓴 <안케패스 대혈전>을 읽고 많은 참전용사들의 속마음을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국가영웅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는 망국행위라고 규정하고 싶습니다. 수많은 외침을 받아온 베트남은 전국 곳곳에 호국영령의 위령탑이 있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 참전용사들에게 깍듯한 예우를 갖춥니다. 우리도 이러한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요?
△ 베트남은 체제 전환 과정에서 ‘도이머이’ 개혁 개방 정책으로 경제가 나날이 성정하고 있습니다. 북한 체제에 주는 시사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 오랫동안 프랑스와 독립전쟁과 통일전쟁을 치른 베트남 사람은 전쟁의 아픔을 지구상의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여 베트남 전쟁을 남북간 전쟁이나 남북 민족 전쟁으로 표현하면 큰일 납니다. 우리는 외세를 물리치기 위하여 항미전쟁을 한 것이지 우리 민족 간에 싸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베트남 사람들이 한반도의 남북관계를 보는 시각은 한민족끼리 왜 대립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싸우면 모두가 손해이니 대화로 해결하라는 주장입니다. 호찌민 주석은 1969년에 남긴 유언에, “국제문제는 가급적 대화로 해결하되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대비해 전쟁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서로 대화하고 한민족 간에 대화로 풀고 싶어도 국제법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주장만 하는데 어찌해야 하느냐 라고 반문하면, 그래도 말이 통하는 한민족이니 대화로 해결하라는 주장인데, 북한이 개방화되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북한의 개방화를 유도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 북한을 각각 수교 상대로 유지해오고 있는 베트남인데, 남북한을 바라보는 베트남 사람들의 인식은 어떤지요?
= 베트남은 북한과 1950년 1월 31일 수교 이후 1960년대 후반 베트남 전쟁 당시인 1966~1968년 즈음에 공군 200~300명 및 심리전 부대 30여 명 등을 파병해 북한군 사상자가 14명(조종사 12명, 정비사 2명)이 발생했습니다. 또한, 각종 군수물자를 지원하였으며, 베트남 대학생 2천여 명을 북한에 유학하도록 지원했고, 산업실습생 교육·훈련 등 사회주의국가간 유대 및 반미항쟁이라는 공동의 목표하에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온 전통우방국입니다. 하지만 한국과의 경제협력으로 베트남 내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이 높아지고, 1995년 미국과의 외교 관계 정상화로 본격적으로 국제사회에 진입하면서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변화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북한의 실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인들이 베트남에 대한 인식에 잘못된 된 부분이 있다면?
= 지각없는 유튜버들의 부질없는 논쟁이 양 국민의 불신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베트남은 13세기에 3차례에 걸친 몽골의 침략을 막아낸 세계 유일의 민족입니다. 서기 40~43년에는 동한(東漢) 지배에 맞서 쯩 자매가 독립운동을 하였고, 금년에 베트남 역사상 최초의 독립운동 1984주년을 기념하였습니다. 대학생들이 군사훈련을 받고, 대학 교수도 남녀 구분없이 사격훈련에 참가합니다. 국방에 관한 한 남녀노소가 없습니다. 외침에는 전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대적하는 민족적 단결력이 강한 민족입니다. 1858년 9월 프랑스의 침략으로 시작된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1954년 5월 7일 디엔비엔푸 대첩으로 프랑스로부터 항복을 받고 하노이를 수복한 민족입니다. 금년이 하노이 수복 70주년이라 성대한 기념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미국과도 맞서 외세를 물리치고 통일을 달성한 민족입니다. 힘에 굴복하지 않는 끈질긴 외세 항거 정신이 대견하지 않나요? 베트남은 강한 민족입니다. 겉만 보고 베트남의 내면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불변, 응만변(以不變, 應萬變-Dĩ bất biến ứng vạn biến - 불변함으로 1만 가지 변화에 대응한다”가 호찌민 주석의 행동 철학입니다. 이것이 베트남 ‘대나무 외교’의 요체라고 생각합니다.
△ 한국과 베트남 양국의 상호 발전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 한국과 베트남은 보완적 관계 속에서 상호 의존도가 높기때문에 2030년 양국 간 교역 규모 목표 1,500억 달러를 조기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대베트남 FDI(외국인직접투자)를 확대하고,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과 함께 기술혁신을 도모하여 용의 후손 베트남을 ‘승천하는 용’으로 둔갑하도록 하여 ‘홍강의 기적’ 이룰 수 있도록 동행하는 것이 포괄적 전략 동반자관계를 지속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국문화에 대한 갈증을 해갈시켜 주기 위한 문화·교육 분야의 교류를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어교육 교사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한국어교육의 전문성을 제고하고,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간 1,000명 규모의 베트남 학생들을 위한 한국문화체험 프로그램 운영한다면 한국에 대한 이해를 높여 지속가능한 협력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 끝으로 한국과 베트남의 지속적인 우호관계 발전을 위해 제안 사항이 있다면?
= 금년 베트남 참전 60주년에 즈음하여 한국과 베트남 민족 900여 년의 교류사에 남아있는 앙금을 걷어내는 선언적인 행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즉, 서울과 하노이에 “세종로”와 “호찌민로” 혹은 “서울로”와 “하노이로”를 각각 명명하고, 매년 그 거리에서 한‧베 문화축제 한마당을 개최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리고 EBS와 베트남 TV방송국이 연계하여 한국방송 전문 채널을 운영하면 한국어를 배우려는 베트남 전국의 학생들이 쉽게 한국어에 접근할 수 있고, 이는 한국으로의 유학의 물꼬를 터주게 되는 효과도 있고 학령인구 부족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대학을 살리고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어 기업에도 활력을 주어 지역 경제도 살리는 1석 3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베트남 유학생들이 많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비자 정책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