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방정부신문=안종기 논설위원] 말재주는 하나의 기술이자 예술이다. 모든 처세술의 절반은 말에 달려 있다. 적절한 말은 운명을 변화시키지만 부적절한 말은 인생을 망친다.
말재주가 뛰어난 이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화제로도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반면, 말재주가 없는 이는 그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들을 따분하게 만든다.
말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제시하는 의견은 단번에 통하기도 한다. 성공한 사람에게 일어난 기적 중에서 적어도 그 절반은 말재주가 만들어낸 것이다.
중국 전국 시대의 소진(蘇秦)은 말재주를 발휘하여 진(秦)나라에 연(燕) 제(齊) 초(楚) 한(韓) 위(魏) 조(趙)의 6개 나라가 뭉쳐서 대적하자는 합종의 계획을 설득시킴으로써 6개 나라의 재상이 되는 행운을 누렸다.
칼보다 무서운 혀를 가졌던 사람으로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외교관으로 꼽히는 서희(徐熙: 942-998)는 거란이 고려를 침입했을 때 거란 장수 소손녕과 담판에서 말재주로 국론이었던 할지론(割地論)을 뛰어넘어 압록강 유역의 강동 6주를 얻어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러나 공자는 말재주의 다른 면을 경계하기도 했다. 「논어」 학이편(學而篇)에서 “교묘하게 말이나 잘하고, 보기 좋게 얼굴빛을 꾸미는 자들 중에는 어진 사람이 드물다(巧言令色 鮮矣仁)”고 했다.
교언영색은 아첨이 특기이고 거짓말을 잘하고 습관처럼 빈말을 내뱉는 사람을 지칭한다. 이런 사람은 인간관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다른 사람을 해칠 뿐 아니라 나라 전체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음을 경고했다.
요즈음 필자는 말재주꾼들의 현란한 혀 놀림을 듣고 보고 있다. 검찰개혁, 공공의대설립, 국정질문, 공직자국회청문회와 서일병 휴가사건 등이 TV만 켜면 종편방송부터 공중파방송에 이르기까지 출연자들이 열변을 토하면서 자신의 논리로 시청자들과 국민을 현혹(?)한다.
그들의 뛰어난 말재주에 내 귀는 팔랑개비가 되어 버린다. 주제가 이념 쪽으로 흐르다 보면 더욱 그러하다. 내가 무식한 것인지 주관이 없는 것인지 이편저편 왔다 갔다 하는 모습에 내심 부끄럽기까지 하다.
패널들은 각자 자기편을 위한 방어자와 공격자로 나왔으니 자신의 말이 맞고 상대방의 말은 거의 틀렸다고 외쳐댄다.
로마의 장군이자 정치가인 시저(Caesar)의 시체 앞에서 죽음의 정당성을 놓고 펼쳤던 브루투스(Brutus)와 안토니우스(Antonius)의 연설처럼 보고 듣는 사람들이 뜨거운 감정에서 냉철한 이성으로 돌아 올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는다.
실례로 공공의대 설립 추진 방안 및 서일병 건을 살펴보자. 공공의대 설립 건에 대해서는 정부와 의사단체가 찬반 대립각을 세우더니 국민들까지 찬반으로 끌어 들이고 끝내 의사파업까지 몰고 왔다.
찬성파들은 “의사 숫자가 OECD 기준 최하위이다. 농어촌 벽지의 의료혜택을 위해 의사수를 늘려야 하기에 필요하다. 공공의대는 입학기준이 일반의대에 비해 낮다, 의사수 증원에 반대해 파업을 일으킨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의사 파업은 국민들에게는 단순한 불편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이다, 과거 정권에서도 논의되었다.” 등등...
반대파들은 “인구당 의사수 증가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WHO보고서에서도 의사수가 부족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하는 나라이다. 4차 산업시대에는 AI의사로 오히려 의사수가 자연 감소되는 상황이 예측된다. 공공의료 확충이라는 명분만 앞세우며 코로나시국에 사회적 논의와 공론화 없이 계획을 발표했다. 공공의대 설립 추진은 곧 부실의대 양성으로 이어질 것이다. 모 도시를 염두에 둔 ‘공공의대 게이트’이다. 입시전형 계획이 의문투성이다” 등등...
장관 아들 서일병 휴가연장건도 살펴보자. A당은 ‘서일병 구하기’에 당의 언변 좋은 사람들이 나서서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될 사람이 군대를 갔다. 식당에서 김치찌개 독촉 수준이다. 카톡으로도 휴가 연장이 가능하다. 안중근에 비유될 만 하다.” 등등... 심지어는 관련된 당직병의 실명을 공개하는 무리수까지 범했다. 나아가 장관 엄마의 언어유희는 A당과의 궁합도 잘 맞았다.
B당의 언변 선수들도 나서서 “휴가규칙을 어겼다. 권력청탁이 있었다. 군대 면제수준의 질병은 아니다. 통역병 선발을 제비뽑기로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등등... 이들은 서일병의 누나까지 신상을 털기도 했다. 현역군인과 부모들은 전화 통화나 카톡으로의 휴가 가능성 언급에 분노를 쏟아내었다.
국민들은 양쪽의 찬반논쟁과 공격방어 싸움을 관심 갖고 지켜보다 점점 도돌이표 되는 말재주에 식상했다. 참과 거짓은 선반 위에 놓인 보따리에 불과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 사람들은 자기논리와 자기주장만을 내놓고 상대방의 말은 들으려하지 않거나 무시하기 일쑤였다.
종횡무진 동문서답식의 말재주가 아닌 김삿갓처럼 고품격의 말재주가 그리웠다. 이들에게 말재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패널들이 말재주보다는 말센스를 갖춰야한다고 생각한다.
미국 유명한 방송인이자 대화전문가인 셀레스트 헤들리(Headlee, Celeste)는 그녀의 저서 「We Need to Talk」에서 “말센스란 적재적소에 필요한 말을 필요한 만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욕구를 잠시 내려놓은 다음, 상대를 바라보고 들어주는 것이며, 상대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을 끌어내는 것이다. 나의 본심을 전달하면서도 누군가의 진심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말하기보다는 들어주고, 재촉하기보다는 기다려주고, 논쟁하기보다는 공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말센스다. 말재주가 통하기 전에 마음이 통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또한 그녀는 말 섞기 싫은 유형으로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 ‘남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 ‘말실수를 못 넘기는 사람’, ‘자꾸 딴 얘기를 하는 사람’ 그리고 ‘뭐든 해본 것처럼 말하는 사람’을 제시한다.
공자는 네 가지를 절대 하지 않았다. 편견을 갖거나 억측하지 않았고, 확실하지 않은 것은 우기지 않았고, 자기의 생각이나 행동만이 옳다고 고집하지 않았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논어」 자한편(子罕篇)에 나오는 ‘4무’(毋意, 毋必, 毋固, 毋我)가 바로 그것이다.
결론적으로 말재주는 말센스를 이기지 못한다. 패널들은 물론 우리도 명심하자. 말하고 싶은 욕구를 참으면서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습관을 만들자. 상대의 얘기가 옳든 그르든, 재미있든 없든 상대가 말을 하는 동안 경청하자. 상대의 표정과 몸짓도 존중하면서 말이다. 그러면 대화에 좀 더 많은 여유가 생길 것이고, 닫혀 있던 상대의 마음이 당신을 향해 우리를 향해 활짝 열리지 않겠는가!
<안종기 본지 논설위원>
안종기(1954년생) 논설위원은 광주고를 졸업하고 전남대학교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교육학석사와 문학석사를, 조선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를 취득했다. Bell College(영국)와 Hawaii University(미국)에서 국비와 교육청 보조로 해외연수로 견문을 넓혔다. 대불대학교와 세한대학교에서 영어교육과 교수로 평생교육원장, 교무처장, Asian대학장, 대학원장을 역임하면서 황조근정훈장(2019년), 대통령표창, 총장상, 광주지방검찰청장표창 등을 수상했다. 대한언어학회 상임위원 감사, 글로벌영어교육학회부회장 등으로 학회활동을 하는 동안 우리나라 영어마을 조성 붐이 일었을 때는 “남악신도시 지역 영어체험시설 기본구상 및 사업타당성 연구(전라남도)”의 책임연구원과 “English Town for Developing Koreans’ English Language &Cultural Competence(Vladivostoc University: Russia)”라는 국제논문(2인공동)을 발표하는 등 영어마을 조성사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현재는 세한대학교 석좌교수를 거쳐 명예교수와 수필가로 활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