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노이 해방 70주년, UNESCO ‘평화의 도시’ 지정 25주년 기념, 하노이친선협회 총연합회(HAUFO) 주최...해외거주 베트남 교민, 하노이 거주 외교사절, 베트남 연구가, 유학생 대상 20여편 공모에서 대상 수상

- 최우수 대상 안경환 교수 수상...한국인 유일의 하노이ㆍ호찌민 명예시민, 베트남 외국인 1호 박사, ‘호찌민 옥중일기’ 최초 번역 소개, 베트남 정부 외국인 최초 문화공로상, 친선문화진흥공로휘장, 평화우호휘장 수상, 세종한국어학당(세종학당 전신) 세계 최초 설립

안경환 응우옌짜이대학교 대외총장(전 조선대 교수)이 26일 하노이 해방 70주년, UNESCO ‘평화의 도시’ 지정 25주년 기념, 하노이친선협회 총연합회(HAUFO) 주최 '내 마음속의 하노이' 베트남 글쓰기 공모전에서 최우수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사진=정양기 기자/하노이친선협회총연합회)
안경환 응우옌짜이대학교 대외총장(전 조선대 교수)이 26일 하노이 해방 70주년, UNESCO ‘평화의 도시’ 지정 25주년 기념, 하노이친선협회 총연합회(HAUFO) 주최 '내 마음속의 하노이' 베트남 글쓰기 공모전에서 최우수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사진=정양기 기자/하노이친선협회총연합회)

[한국지방정부신문=정양기 기자] 올해는 베트남이 1954년 5월7일 보응우옌잡 장군이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군에 대승하고 프랑스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나 그해 10월 10일 하노이를 되찾은 지 올해로 70주년이 되는 해다.

또한 1999년 7월 16일 UNESCO가 하노이를 “평화의 도시”로 공인한 지 25주년이 되는 해로 하노이에서는 호안끼엠호수를 중심으로 갖가지 축하 기념행사가 개최되었다.

특히 10월 26일 오후 2시에 하노이 호안끼엠군 군청 5층 강당에서는 하노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교사절, 베트남 연구가, 유학생을 대상으로 하노이 해방 70주년ㆍUNESCO ‘평화의 도시’ 지정 25주년 기념을 위한 “내 마음속의 하노이” 라는 주제로 한 베트남 글쓰기 공모대회 시상식이 있었다.

영예의 대상인 최우수상은 하노이 1호 명예시민인 대한민국 출신의 안경환 응우옌짜이대학교 대외총장(전 조선대학교 교수)이 “하노이는 내 마음속의 노란 별”이라는 작품으로 수상했다. 상장과 함께 상금 5백만동을 받았다.

26일 하노이 호안끼엠군 군청 5층 강당에서 하노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교사절, 베트남 연구가, 유학생을 대상으로 “내 마음속의 하노이” 라는 주제로 한 글쓰기 공모대회 시상식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안경환 교수가 수상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정양기 기자/하노이친선협회총연합회) 
26일 하노이 호안끼엠군 군청 5층 강당에서 하노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교사절, 베트남 연구가, 유학생을 대상으로 “내 마음속의 하노이” 라는 주제로 한 글쓰기 공모대회 시상식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안경환 교수가 수상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정양기 기자/하노이친선협회총연합회) 

안경환(68) 응우옌짜이대학교 대외총장은 충청북도 충주 출신으로 충주고와 한국외대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해병대 중위로 예편했다. 1992년 한-베 수교 이전부터 현대그룹 베트남 주재원으로 인연을 맺은 안 교수는 베트남 국립호찌민인문사회과학대학교 대학원에서 어문학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해 베트남 외국인 1호 박사로 유명하다. 베트남 정부로부터 외국인 최초로 문화공로상과 친선문화진흥공로휘장과 평화우호휘장, 호찌민시로부터 휘호, 응에안성으로부터 호찌민 휘호를 받았다.

특히, 특히 베트남 민족영웅 호찌민 주석의 "옥중일기"와 베트남 문학의 정수인 "쭈옌끼에우" 등 베트남 문학작품을 가장 많이 한국어로 번역하여 소개하여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교류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저명한 학자로 베트남문학회에서 외국인 최초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마오쩌뚱, 저우언라이. 체게바라, 시하누크, 훈센, 수카르노, 김일성, 카스트로, 오부치 게이조 등과 함께 베트남 정부에서 선정한 전 세계 “베트남의 친구들” 410명 가운데 한 명으로 추대되었다.

2014년 10월 12일에는 하노이 수복 60주년 기념으로 하노이시에서 '수도 하노이 명예시민'으로 추대된 유일한 한국인이며 동시에 호찌민 명예시민이기도 하다. 2017년 11월 20일에는 국립호찌민인문사회과학대학 개교 60주년 기념식에서 ‘자랑스러운 동문 60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으며, 2018년 12월 베트남 정부로부터 우호훈장을 수훈했다. 조선대학교 교수와 한국베트남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조선대학교 교수로 재직 시에는 2008년 호찌민시 소재 국립호찌민인문사회과학대학교와 합작으로 세종한국어학당(세종학당 전신)을 세계 최초로 설립하여 한국어를 최초로 해외에 수출한 장본인이다,

26일 하노이친선협회 총연합회(HAUFO)가 주최한 '내 마음속의 하노이' 공모전 시상식 행사에서 수상자들과 참석자들이 단체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정양기 기자/하노이친선협회총연합회)
26일 하노이친선협회 총연합회(HAUFO)가 주최한 '내 마음속의 하노이' 공모전 시상식 행사에서 수상자들과 참석자들이 단체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정양기 기자/하노이친선협회총연합회)

하노이친선협회 총연합회(HAUFO)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전 베트남 국회부의장이자 전 중앙당 위원이며 베트남평화위원회 위원장인 우옹쭈르우(Uông Chu Lưu), 베트남 친선협회총연합회(VUFO) 부회장 동후이끄엉(Đồng Huy Cương), 하노이친선협회 총연합회(HAUFO) 쩐티프엉(Trần Thị Phương) 상근부회장과 응우옌남하이 부회장, 베트남 주재 라오스 대사관 담당자, 베트남 주재 외교사절 단장을 맡고 있는 사디 살라마(Saadi Salama) 팔레스타인 대사가 참석했다.

쩐티프엉(Trần Thị Phương) 상근부회장은 이번 “내 마음 속의 하노이”를 주제로 한 글쓰기 대회는 ‘평화의 도시’ 하노이를 널리 알리고 세계 평화 정착에 기여하고 베트남 국민의 단결, 하노이시민과 세계인과의 우의를 다지기 위하여 하노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교사절, 베트남 연구가, 유학생을 대상으로 공모하였다고 말했다.

글쓰기 공모는 지난 5개월 동안 해외 거주 베트남 교포를 포함하여 영어 또는 베트남어로 모두 200편이 접수되었고, 심사위원단은 출품된 작품이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 음식에 대해 잘 이해하는 내용으로 하노이에 대한 애정과 감성이 풍부한 작품들이었다고 평했다.

그 가운데 50편을 1차로 선정하였고, 최종21편을 선정하여 최우수상 1편, 1등상 2편, 2등상 3편, 3등상 5편, 나머지 10편에 장려상을 수여하였다.

최우수상은 하노이 명예시민인 한국의 안경환 교수에 이은 1등상 2명은 팔레스타인 특명전권대사로 베트남 주재 외교사절 단장인 사디 살라마(Saadi Salama) 대사는 “또 다른 하노이”로, 중국 국적의 메이렝( Mei Leng)이 “ 내 마음속의 하노이”로 수상하였다.

최우수 대상 수상작,
안경환 교수의 "하노이는 내 마음속의 노란별" 전문

하노이 해방 70주년 !  

감격스러운 기념일이다. 지난 10월 6일, 리 태조 동상 앞에서 하노이 해방 70주년 기념행사가 엄중하게 그리고 화려하게 진행되었다. 팜민찐 총리, 쩐시타인 하노이 인민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고위 인사들이 참석하여 시민들과 끝까지 자리를 함께해 주었다. 자랑스러운 지도자들이다. 나는 하노이명예시민 자격으로 초대받아 행사에 참석하였다.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내가 베트남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74년부터였다. 금년이 딱 50년이 되었다. 나는 1989년에 하노이에 처음으로 왔다. 당시는 한국과 베트남이 외교 관계가 수립되기 전이라 한국 사람도 거의 없었고 한국 식당은 전혀 없었다. 베트남에 발을 디딘 지 어느덧 35년이 되었다. 그동안 베트남은 나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베트남에서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베트남 최북단 룽꾸에서, 최고봉 사빠. 최남단 까마우 까지 전국을 거의 다 다녀보았다. 35년 전과 지금의 하노이를 비교해 보면 상전벽해와 같이 많이 변하였다. 처음 하노이에 왔을 때는 시내에 전기도 부족했고 도로에 차도 많지 않았다. 지금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자전거와 Xich lo도 많았다. 고층 건물로 숲을 이루고 있는 현재의 하노이는 내가 처음 왔을 때와 비교해 보면 하늘과 땅처럼 완전히 변모하였다. 1989년 당시에 처음보는 하노이는 낯이 설었지만 나에게는 위대해 보였다. 

하노이는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수도이며, 1010년에 Ly 태조가 도읍으로 정한지 1014년이 된 고도이다. 1009년 리꽁우언(vua Lý Công Un)왕은 새로운 도읍을 정하기 위해 호아르(Hoa Lư)를 떠나 이곳 저곳을 다니다가 다이라(Đại La)성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꿈에서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이를 국가가 번영할 좋은 징조로 여기고 이곳을 수도로 정하고 이름을 탕롱(Thăng Long)으로 바꾸었다. 탕롱(Thăng Long)은 용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뜻이다.  

탕롱(Thăng Long)은 1243년 쩐왕조(nhà Trần)에서 “롱프엉-Long Phượng”으로 바뀌었다가 쩐 왕조(nhà Trần)말에 호꾸이리(H Quý Ly)에 의해 동도(Đông Đô)로 바뀌었다. 

하노이의 이름 변천사는 베트남 역사의 변천과 맥을 같이한다. 15세기 명나라가 침략했을 때는 “동꽌( Đông Quan)으로, 레 태조는 명나라 군사를 물리치고 동낀(Đông Kinh)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527년 막씨 왕조에서 탕롱 “Thăng Long”으로 되돌려 놓았다. 

호안끼엠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는 Ly 태조 동상은 하노이 역사성의 상징이다. Ly 태조의 후손은 12세기와 13세기에 한반도의 고려 왕조로 망명하여 한국의 정선 이씨와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 한국과 베트남민족의 혈연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Thang Long-Van Hien Ha Noi!”.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하노이 시민들은 역사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깊다. 그 자부심은 바로 애국심이다. 그 애국심으로 1954년 5월 7일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와 싸워 대승을 하였고, 그해 10월 10일 하노이를 다시 품에 안았다. 이제 프랑스 손아귀에 서 하노이를 해방시킨 지 70년이 된 것이다.  

235년전 1789년에는 Tây Sơn 왕조의 Quang Trung 황제가 “Ngọc Hồi – Đống Đa” 전투에서 청나라의 침략을 물리친 위대한 역사가 있다. 

1258년 몽골군이 침략해 왔을 때는 “Đông Bộ Đầu” 전투에서 외적을 물리치고 하노이를 지켰다. 766년전에 있었던 역사적인 위대한 승리였다.   

이처럼 외적이 침입하여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하노이 사람들은 외적을 물리치고 적의 손에서 하노이를 되찾고 나라를 지켰다.

아름다운 역사를 간직하고 전통이 살아 있는 하노이 중심부에 호안끼엠 호수가 있다. 호수 중심부에는 거북탑이 있고, 거북이의 전설과 함께 아침을 맞이하는 하노이 시민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호수 둘레의 가로수를 보며 산보하다가 커피Shop에서 마시는 그윽한 커피 맛은 일품이다. 호안끼엠 호수의 물 색깔은 옛 이름 “Lục Thủy-綠水 그대로 푸른 물이다. 

호안끼엠 호수에는 역사적 유산이 많다. 테훅교(Cầu Thê Húc)를 지나면 응옥선 사당(Đền Ngọc Sơn)에 이른다. 테훅교(Cầu Thê Húc)는 1865년 응우옌반시에우(Nguyễn Văn Siêu)가 건설하였다. 테훅(Thê Húc)은 아침 햇빛이 비치는 장소라는 뜻이다.

호안끼엠 호수가 있어 하노이를 하노이 답게 한다. 주변의 대성당, 중앙은행, 오페라하우스, 등등 문화 유산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하노이가 1천년 고도임을 증명해 준다. 

베트남에는 민족 영웅 호찌민 주석이 있고, 호찌민 주석은 베트남의 상징이다. 그는 바딘 광장 영묘에 모셔져 있다.  바딘 광장은 현대 베트남의 역사성을 보여준다. 1945년 8월 혁명을 승리로 이끌고 9월 2일 호찌민 주석이 독립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24년간 베트남을 영도하면서 프랑스와 독립투쟁을 승리로 이끌어 베트남 민족에 독립과 자유를 되찾아 주었다.  

바딘 광장은 베트남 정치 1번지다. 주석궁, 국회의사당, 베트남 공산당사가 있다. 호찌민 박물관, 일주사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더욱이 장엄한 호찌민 주석의 영묘가 바딘 광장을 지키고 있어 엄숙함을 더해준다. 호찌민 주석은 UNESCO가 인정한 베트남 민족해방의 영웅으로 모든 독립투사들이 그렇듯이 독립운동을 하는 동안 그리고 독립을 이룬 뒤에도 평생을 생활의 편리함이나 음식사치를 하지 않았다. 국민과 함께 고난도 기쁨도 늘 함께 나눴다. 호찌민 주석은 국민을 “다스림”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그에게 국민은 항상 “함께, 더불어”의 대상이었다. 그의 철학은 국민과 “함께 일하고, 함께 먹고, 함께 자는” ‘바꿍(3 가지를 함께하는) 정신”이다. 

호찌민 주석은 1911년 6월 5일에 21세의 나이로 자신의 민족주의적 야망을 후원해 줄 수 있는 후원자를 찾으러 사이공 항구에 정박 중이던 프랑스 상선 ‘아미랄 라뚜쉬 뜨레빌호 (Amiral Latouche-Tréville’의 보조 요리사로 승선하여 프랑스로 갔다. 이때부터 30년간을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온갖 고생을 다 겪었다. 그런 점에서 호찌민 주석만큼 많은 직업을 가져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원사, 미화원, 석탄을 때는 화부, 조리사 보조원, 사진사, 중국 골동품 그림을 그리는 화가 등 생계유지를 위해서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직업을 가졌었고, 수많은 고생을 하였다. 화부로 있을 때는 불에 달군 벽돌을 가져다 침대 밑에 깔고 자면서 추위와 싸우기도 하였다. 인간이 감내할 수 있는 고통이라고는 다 겪어 보았다고 할 수 있다. 호찌민 주석이야 말로 눈물의 빵이 아니라 피의 빵을 먹어본 사람이고, 옥중생활로 자유의 소중함을 알고 배고픈 국민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영도자였다. 평소에 “독립과 자유보다 귀한 것은 없다”고 주장하며 국민들을 단결시킨 호찌민 주석의 위대한 리더십이 베트남의 독립과 통일을 달성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고, 베트남 역사에 전쟁 불패의 신화를 다시 한번 쓰게 하였다.

호찌민 주석은 매사에 솔선수범하고, 국민과 더불어 생사 고락을 하면서, 국가의 미래를 전망하였다. 호찌민 주석은 전 세계를 떠돌며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이다. 따라서 전 세계의 혁명가들과 소통하고 지지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그는 프랑스어, 영어, 러시아어, 태국어, 3개의 중국 방언을 구사할 줄 아는 국제적 감각을 갖춘 정치 지도자였다. 그는 정치가이면서도 베트남이 낳은 문호이기도 하다. 호찌민 주석은 1942.8.27-1943.9.10까지 380일간 중국 장제스(1887–1975) 군대에 체포되어 중국 광시성 13개 현(縣)의 18개 감옥에 수감생활을 하면서 쓴 133편의 <옥중일기(獄中日記)>가 있다. <옥중일기>는 베트남 사람이 한자로 쓴 한시집이다. <옥중일기>를 통해서 베트남의 민족지도자가 감옥에서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도 좌절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조국만을 생각하는 애국정신 그리고 극한 상황에서도 여유로움 속에서 보여주는 해학적인 사고방식과 겸손한 인간성은 물론 동서양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을 엿볼 수 있다. 

하노이는 평화의 도시이다. 베트남 민족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다. 배고픔을 모르는 사람은 밥의 맛을 모른다. 자유를 빼앗겨보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자유를 모른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평화의 의미를 모른다. 나라를 빼앗긴 아픔을 모르는 사람은 독립의 중요성을 모른다.

베트남은 독립과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 평화를 누릴 자격이 있다. 수많은 외적의 침입과 독립과 자유보다 귀한 것은 없다는 것을 어느 민족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이 독립을 되찾고 1954년 10월 10일 하노이를 해방시킨 것은 호찌민 주석의 지도력과 국민들의 일치된 단결력 때문이었다. 그리고 UNESCO는 1999년 7월 16일 하노이를 평화의 도시로 공인하였다.  

앞으로 하노이는 세계 평화를 이끌어가는 세계적인 도시로 더욱 발전할 것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명품 수도로 발전할 것이다. 

하노이에서 호안끼엠 호수의 푸른 물빛을 보며 세계 평화를 키워 나가 자. 하노이의 진주 같은 호안끼엠 호수의 물이 마르지 않는 한 베트남 사람들은 평화를 노래하고, 하노이시민은 호안끼엠 호수를 사랑할 것이다. 호찌민 주석이 베트남을 자랑스럽게 하고, 호안끼엠 호수의 전설이 하노이를 더욱 평화롭게 한다. 세계인들이여! 하노이에서 평화를 배우자!

응우옌짜이대학교 대외 총장/하노이 명예시민/호찌민시 명예시민 
제 21기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자문위원(하노이 지회) 

전 베트남학회 회장/조선대학교  교수 안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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