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위왕대사한 신숭겸 장군 평산 신씨 종중과 베트남 레라이 장군 종중 자매결연 통해 양국 충의정신 고양 사업 필요

레(黎) 왕조(1428~1788) 태조의 목숨을 구하고 자신을 희생한 레라이(Lê Lai) 장군 사당(사진=안경환)
레(黎) 왕조(1428~1788) 태조의 목숨을 구하고 자신을 희생한 레라이(Lê Lai) 장군 사당(사진=안경환)
안경환 박사
베트남 응우옌짜이대학교 총장(대외), 하노이 명예시민, 민주평통 하노이지회 자문위원(제21기), 전 조선대학교 교수, 전 한국베트남학회 회장, 전 KGS국제학교 이사장 역임

[안경환 박사/응우옌짜이대학교 대외총장] 베트남 민족은 충의열사의 나라이다. 그들을 기리기 위하여 모든 도로명을 충의열사의 이름을 따서 작명하였다. 한민족에 신라 말 고려 초에 태조 왕건의 목숨을 구한 장절공 신숭겸(申崇謙) 장군이 있듯이 베트남 민족에는 레(黎) 왕조(1428~1788) 태조의 목숨을 구하고 자신을 희생한 레라이(Lê Lai) 장군이 있다.

레(黎) 태조를 대신하여 희생한 레라이(Lê Lai) 장군 활동 당시의 역사를 살펴보면, 호꾸이리가 쩐(陣)왕조(1225~1400)를 폐하고 호(胡)씨 왕조(1400~1407)를 세웠다. 이에, 쩐(陣) 왕조에서는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였고, 이를 빌미로 명(明)나라가 군사를 보내 호(胡)씨 왕조를 없애버렸다. 이로써 호(胡) 왕조는 7년 만에 무너지고, 명나라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쩐 왕조에서 외침을 자초한 것이었다.

명나라 지배가 시작되자 각 지방에서는 의병이 일어났다. 그중에서 1418년 타인호아 람선 지방에서 자신을 평정왕(平定王)으로 칭하고 군사를 일으킨 레러이(Lê Lợi,黎利:1385~1433)가 명나라 군대를 물리치고, 베트남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레(黎) 왕조(1428~1788년)를 개국했다. 레러이는 타인호아성 람선 지방의 토호로 명나라 군사와 10년간의 투쟁 끝에 독립을 쟁취한 구국 영웅이다.

명나라 군사와 전투 중 레러이 장군이 1419년 하이즈엉성(省), 찌린(Chí Linh) 산에서 명나라 군사에 포위되어 생명이 위급하게 되었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서 응우옌턴(Nguyễn Thân) 장군이 대왕의 갑옷을 입고 코끼리를 타고 나가 명나라 군사와 대적할 터이니, 그 틈을 이용하여 대왕께서는 피신하여 후일을 도모할 것을 간청하였다.

응우옌턴 장군의 기개와 충의에 감동한 레러이는 하늘에 고하기를, “응우옌턴(Nguyễn Thân) 장군이 짐을 대신하여 죽기를 각오하고 있으니, 향후 짐은 물론 짐의 후손들이 장군의 공(功)을 행여라도 망각한다면, 궁궐을 황폐화하고, 옥새(玉璽)를 쇳덩이로 만들어버리고, 예리한 칼날이 짐을 향하여 반역하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성(姓)씨인 레(Lê)씨를 응우옌턴 장군에게 하사하고, 이름도 라이(Lai)라고 부르게 하였다.

이리하여 레라이(Lê Lai)가 황룡포(黃龍袍)를 입고 싸우니, 명나라 군사는 레라이(Lê Lai)를 평정왕 레러이(Lê Lợi)로 알고 일거에 달려들어 사로잡았다. 포로가 된 레라이는 명나라 군사에 극심한 고문을 당하고 참수되었다.

이후 천신만고 끝에 명나라 군사를 물리치고 레(Lê) 왕조를 세운 태조 레러이는 레라이의 충의정신을 기려 군사를 총괄하는 직책인 태위(太尉)로 추증하고, 내가 죽거든 나보다 하루 먼저 레라이 장군의 제사를 지내라고 하였다. 테조 레러이의 기일은 음력 8월 22일이라, 레라이 장군의 기일은 음력 8월 21일이 되었다. 그래서 베트남 민간에, “21일은 레라이(Lê Lai)요, 22일은 레러이(Lê Lợi)다.”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신숭겸 장군이 태조 왕건을 위해 위왕대사한 지 492년 뒤인 1419년에 베트남에서도 레라이 장군이 레(黎) 태조를 위해 위왕대사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606년 전의 일이다.

이처럼 베트남 역사에도 왕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들이 있어 왕조가 이어져 왔고, 민족정신이 계승되어왔다. 이들의 고매한 충의정신을 이어가도록 고양하는 것은 국가의 번영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베트남은 대도시마다 도로에 “레라이” 이름을 딴 거리를 명명하여 그의 충의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후세에 전하고 있다.

한‧베 우호관계의 진작을 위해 신숭겸 장군을 시조로 하는 평산 신씨 종중과 레라이 종중이 서로 자매결연을 맺고. 위대한 조상들의 얼을 되살린다면 두 민족 교류사에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고, 그들의 충의 정신을 고양하는 것은 한반도 통일을 앞당기는 도화선이 될 것이다.

국가 유적으로 지정된 레라이 사당은 타인호아성 타인호아시에서 서쪽으로 약 50km 떨어져 있다. 1939년과 1944년 응우옌 왕조 마지막 왕인 바오다이 왕때 사당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고, 매년 음력 8월 21일과 실제 기일인 음력 1월 8일 제례를 장중하게 올리고 축제가 열린다. 가마 행렬, 찬양가, 징 공연, 검무, 활쏘기 대회, 닭싸움 등등 행사가 열려, 향과 공양을 바치는 수천 명의 방문객과 함께 주민들의 큰 축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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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필자인 안경환 박사는 현재 베트남 응우옌짜이대학교 총장(대외)으로 재직 중이며, 하노이 명예시민, 민주평통 하노이지회 자문위원(21), 조선대학교 교수, 한국베트남학회 회장, KGS국제학교 이사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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