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최고의 베트남통, 안경환 교수가 본 ‘호찌민의 유산에서 선진국 진입까지’
- 베트남 ‘제2의 도이머이’ 단행, 선진국 도약 위한 정부조직·행정구역 파격 통폐합...베트남 통일 50주년·독립 80주년·호찌민 탄생 135주년, ‘국가 대개조’ 원년 선포

안경환 응우옌짜이대학교 대외총장
안경환 응우옌짜이대학교 대외총장

[한국지방정부신문=안경환 응우옌짜이대학교 대외총장] 2025년 4월 30일, 베트남은 통일 50주년을 맞이한다. 1975년, 미국과의 긴 전쟁 끝에 남베트남을 완전히 해방시키고 나라를 하나로 합친 그날은 베트남 역사에서 단순한 전쟁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리고 올해 베트남 통일 50주년, 독립 80주년, 호찌민 탄생 135주년을 맞이한 베트남은 ‘국가 대개조’ 원년을 선포하며 '제2 도이머이(Đổi mới)'를 통해 2045년 미래 선진국을 향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독립과 통일, 민족의 투쟁과 승리

베트남에 군대를 진주시키고 있던 일본이 1945년 8월 15일 항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었고, 이를 기회로 호찌민 주석은 8월 혁명을 일으켜 응우옌(阮) 왕조의 바오다이 왕을 퇴위시키고 9월 2일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래서 금년은 베트남의 8월 혁명 성공 80주년이 된다.

당시 베트남 주둔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북위 16도 선을 경계로 북부에 중국의 장제스 군이 진주하였고, 남부에는 영국군이 진주하였다. 베트남을 식민지배했던 프랑스는 중국, 영국과 협상을 벌여 1946년에 중국군과 영국군을 철수시키고 대신 프랑스군을 베트남에 상륙시켰다. 이는 바로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프랑스는 1954년 5월 7일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대패하였고 그해 10월 12일 하이퐁 항구를 통해 완전히 철수하였다. 프랑스군 대패하자 1954년 7월 20일 제네바 협정에 따라 베트남은 북위 17도 선을 경계로 다시 분단되었다. 이에, 호찌민 주석은 남부 베트남을 지원하고 있는 미국에 맞서 끈질기고 처절한 항미 전쟁을 치르고 1975년 4월 30일 통일을 달성하였다.

호찌민 정신, 베트남 발전의 뿌리

평생 175개의 가명과 필명을 사용하며 독립운동을 한 호찌민 주석의 통치 철학은 국민과 함께 일하고, 함께 먹고 자는 이른바 “바(3) 꿍 정신”이었다. 국민과 진정으로 소통하고 더불어 사는 호 주석의 철학이 프랑스 세력을 축출하고 독립을 달성하였으며 베트남 통일의 원동력이 되었다. 베트남의 독립과 통일은 순전히 호찌민 주석의 영도력에 따른 결과였다.

호 주석은 모든 국민이 단결할 것을 늘 주장하였고, 국민의 단결을 자신의 눈동자처럼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모든 간부는 근검렴정(勤儉廉正)하고, 지공무사(至公無私)하여야 하며, 국민에게 충성스러운 공복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조국의 통일을 달성할 수 있고,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베트남 민족 영웅 호찌민의 동상 앞에 선 필자 안경환 총장(사진=안경환 편집위원)
베트남 민족 영웅 호찌민의 동상 앞에 선 필자 안경환 총장(사진=안경환 편집위원)

‘도이머이(Đổi mới)’에서 선진국 도약까지

이제 1986년 베트남 개혁ㆍ개방 정책인 ‘도이머이(쇄신)’ 정책을 채택한 지 39년이 지나면서 베트남의 경제발전이 가속화되고 있다. 1992년 12월 22일 한‧베 외교관계가 수립 이후 현재 1만여 개의 한국기업이 베트남에 서 활동하고 있고, 베트남은 한국 관광객이 제일 많이 찾는 나라가 되었다.

2024년도에 베트남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1,760만 명 가운데 한국인이 457만 명으로 전체 27%를 차지하였다. 한국과 베트남 민족의 900여 년의 교류 역사를 바탕으로 양국 외교관계는 최고 수준인 “포괄적 전략 협력 동반자 관계”로 발전되었고, 베트남은 한국의 3대 교역국이 되었다.

한국과 베트남은 문화적인 유사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 특징이며, 이러한 요인이 두 나라의 우호협력 관계를 빠르게 발전시켜 왔고 이러한 관계 발전은 향후 지속될 것이다.

새로운 8월 혁명, 그리고 2045년의 꿈

이제 베트남은 '정부 조직 20% 감축'과 '63개 행정구역의 34개로 통폐합' 등을 전격 단행하면서 1986년 ‘도이머이’ 개혁 개방화 정책에 이어 '제2의 도이머이'로 일컬어지는 대규모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베트남 국운을 가를 또 하나의 “8월 혁명”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2024년 11월 25일 또럼 총비서는 “달리면서 줄을 서는 정신(tinh thần "vừa chạy vừa xếp hàng)"으로 모든 업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국가 발전의 황금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정부 조직을 축소개편 한다.”고 했다.

베트남은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5년까지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1975년 통일을 1단계로, 1986년 도이머이 개혁개방 정책 도입을 2단계, 건국 100주년인 2045년 선진국 진입을 3단계 도약으로 보고 있다.

베트남은 3단계 도약을 성공시키기 위해 2022년 11월 ‘2030년 마스터 플랜’을 발표한 바 있다. 우선 203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을 USD7500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2025년에는 중소득 국가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베트남이 2045년까지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정부 조직의 대대적인 변혁이 성공해야 한다.

베트남인들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들이다. 1988년까지만 하더라도 쌀을 수입해야 할 정도로 식량이 부족했지만 1989년 개인 농지 소유 확대 및 시장경제 정책을 도입하면서 쌀 생산량이 늘어나 지금은 세계 2위의 쌀 수출국이 되었다.

베트남은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5년까지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호찌민 주석의 사상을 토대로 분단의 벽을 넘어 통일을 달성하였고, 국민이 단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 50주년, 미래를 여는 디딤돌

베트남 통일 50주년은 과거를 기념하는 날이자, 미래를 설계하는 출발점이다. 베트남 국민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나라를 위해 단결할 줄 아는 민족이다. 무엇보다, 호찌민 주석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국민과 함께 나아가고 있다.

다가오는 2045년, 베트남은 반드시 선진국 문턱을 넘어설 것이다. 통일 50주년이 그 꿈을 현실로 만드는 디딤돌이 되길 기대한다. 베트남은 할 수 있다. 그리고, 반드시 해낼 것이다.

국내 최고의 베트남통, 필자 안경환 교수 ‘그는 누구인가?’

본지 편집위원인 안경환(68) 응우옌짜이대학교 대외총장은 충청북도 충주 출신으로 충주고와 한국외대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해병대 중위로 예편했다. 1992년 한-베 수교 이전부터 현대그룹 베트남 주재원으로 인연을 맺은 안 교수는 베트남 국립호찌민인문사회과학대학교 대학원에서 어문학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해 베트남 외국인 1호 박사로 유명하다. 베트남 정부로부터 외국인 최초로 문화공로상과 친선문화진흥공로휘장과 평화우호휘장, 호찌민시로부터 휘호, 응에안성으로부터 호찌민 휘호를 받았다.

특히, 특히 베트남 민족영웅 호찌민 주석의 "옥중일기"와 베트남 문학의 정수인 "쭈옌끼에우" 등 베트남 문학작품을 가장 많이 한국어로 번역하여 소개하여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교류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저명한 학자로 베트남문학회에서 외국인 최초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마오쩌뚱, 저우언라이. 체게바라, 시하누크, 훈센, 수카르노, 김일성, 카스트로, 오부치 게이조 등과 함께 베트남 정부에서 선정한 전 세계 “베트남의 친구들” 410명 가운데 한 명으로 추대되었다.

2014년 10월 12일에는 하노이 수복 60주년 기념으로 하노이시에서 '수도 하노이 명예시민'으로 추대된 유일한 한국인이며 동시에 호찌민 명예시민이기도 하다. 2017년 11월 20일에는 국립호찌민인문사회과학대학 개교 60주년 기념식에서 ‘자랑스러운 동문 60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으며, 2018년 12월 베트남 정부로부터 우호훈장을 수훈했다. 조선대학교 교수와 한국베트남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조선대학교 교수로 재직 시에는 2008년 호찌민시 소재 국립호찌민인문사회과학대학교와 합작으로 세종한국어학당(세종학당 전신)을 세계 최초로 설립하여 한국어를 최초로 해외에 수출한 장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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