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찌민(Hồ Chí Minh) 주석은 1990년 UNESCO 공인 세계 문화인 선정...베트남 독립과 통일의 영도자이자 민족 영웅으로 칭송
- 호찌민 주석의 〈옥중일기〉 번역해 한국에 최초 소개...호찌민 주석의 도덕성과 애국·애민·애족사상에 감명
- 또럼(Tô Lâm) 총비서의 ‘달리면서 줄을 서는 정신(tinh thần "vừa chạy vừa xếp hàng)’으로 '제2의 도이머이‘ 선포...'정부 조직 20% 감축' '63개 행정 구역 34개로 통폐합‘, 또 하나의 ‘8월 혁명’ 단행
- 호찌민 주석의 ‘근검렴정(cần, kiệm, liêm, chính)’ ‘지공무사(chí công vô tư)’ 정신으로 건국 100주년 2045년 선진국 진입 실현
[한국지방정부신문=정양기 기자] 올해로 베트남 통일 50주년(4월 30일), 독립 80주년(9월 2일), 호찌민(Hồ Chí Minh) 탄생 135주년(5월 19일)을 맞이한 베트남은 ‘국가 대개조’ 원년을 선포하며 '제2 도이머이(Đổi mới)'를 통해 건국 100주년인 2045년 선진국 진입을 향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1975년 통일, 1986년 도이머이(Đổi mới) 선포, 그리고 건국 100주년인 2045년 선진국 진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년 7%의 고도성장을 달성하며 ‘아시아의 신룡(新龍)’으로 떠오른 베트남은 최근 '정부 조직 20% 감축'과 '63개 행정구역의 34개로 통폐합'이라는 대규모 개혁을 추진하고 있어 한국을 비롯한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은 모두 5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민족이자 유교 문화권의 영원한 동반자이다. 1992년 12월 공식 외교관계 수립 이후 현재는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전 분야에서 긴밀한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5월 19일은 베트남 민족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인물이자 베트남의 민족적 영웅인 호찌민(Hồ Chí Minh. 1890.5.19~1969.9.2) 주석의 탄생 135주년 기념일이다.
본지는 호찌민 주석 탄생 135주년을 맞이하여 호찌민 주석의 <옥중일기>를 번역해 한국에 최초로 소개하여 베트남 국가훈장을 수훈하는 등 베트남과 호찌민 주석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한국 유일의 하노이 명예시민이자 베트남 하노이 소재 응우옌짜이대학교 대외총장을 맡고 있는 안경환 총장을 5월 6일 부산에서 만나 특별대담을 가졌다.〈편집자 주〉
▲ 교수님께서는 이번 베트남 통일 50주년 기념행사가 대대적으로 개최되었는데 어떻게 평가할 수 있습니까?
= 베트남은 지난 4월 28일부터 5월 4일까지 일주일 동안 베트남 통일 50주년(1975.4.30.~2025.4.30)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장엄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도 진행했습니다.
이번 통일 50주년 기념식에는 또럼(Tô Lâm) 총비서를 비롯한 르엉끄엉(Lương Cường) 국가주석, 팜민찐(Phạm Minh Chính) 총리, 쩐타인먼(Trần Thanh Mẫn) 국회의장, 당 중앙위원회 위원, 조국전선중앙위원회 위원 등 정치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했습니다.
또럼(Tô Lâm) 총비서는 이날 ‘조국통일의 날 50주년’을 기념하는 연설을 통해 “국가의 독립과 통일을 수호하고 더욱 아름다운 나라를 건설할 것”을 다짐하고 “통일 후 50년과 도이머이 개혁 40여 년의 시행 과정을 거쳐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위대하고 괄목할 만한 역사적인 업적을 이루었으며, 오늘날과 같은 토대와 잠재력, 지위, 그리고 국제적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기념식은 당기와 국기를 휘날리는 헬리콥터 편대의 축하비행으로 시작되었고, 이어 베트남 공군 전투기 편대가 비행했고, 지상에서는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의 국장 모형의 자동차, 호찌민 주석 초상화, 남부베트남 해방과 조국통일 50주년을 상징하는 차량이 기념식장을 통과 했습니다.
그 뒤를 이어 호찌민시 중심도로인 레주언로와 응우옌빈키엠로 교차로에서 출발한 38개의 군부대, 12개 민간단체가 (구)독립궁인 통일회관 앞 레주언 거리에 설치된 기념식장을 지나 4개 방향으로 시가행진이 진행됐습니다.
특이한 것은 이번 기념행사에 중국, 라오스, 캄보디아 군대가 시가행진에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라오스와 캄보디아 축하사절이 또럼 총비서 옆에 앉아 기념식에 참석한 것입니다.
금년은 베트남 통일 50주년, 독립과 정부수립 80주년, 호찌민 주석 탄생 13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번 베트남 통일 50주년 기념행사는 경제개발로 자신감을 얻은 베트남의 자신감을 대내외에 과시한 가장 장엄한 행사였다고 봅니다.
베트남 제1의 상공업도시인 호찌민시에서 수십만의 인파가 참석하여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고취시켰고, 2045년까지 선진국 진입목표를 향한 내부 결속과 단결을 다지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베트남 통일 50주년 기념을 맞이하여 통일의 주춧돌을 놓고 기반을 닦은 호찌민 주석을 연구하고 호찌민 주석의 ‘옥중일기’와 유언장을 한국어로 번역하시는 데 가장 큰 원동력은?
= 호찌민 주석의 ‘옥중일기’와 유언장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데 원동력이 되었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33년 전인 1992년 12월 22일 한국과 베트남의 외교 관계가 수립되었음에도 당시 한국에서는 베트남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 부족했고, 한국 사람들은 호찌민 주석이 누구인지? 역사적으로 어떤 인물인지?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호찌민 주석의 ‘옥중일기’와 유언장 을 반드시 한국어로 번역하여 한국 사람들에게 호찌민 주석의 도덕성과 호 주석의 사상을 소개하고 싶었던 것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베트남을 연구하고 호찌민 주석의 문학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해 온 전문가로서, 베트남 역사에서 호찌민 주석의 영향력과 역할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호찌민 주석은 1990년에 UNESCO에서 공인한 바와 같이 세계적인 문화인이다. 만약 베트남에 호찌민 주석이 없었다면 과연 프랑스로부터 독립이 가능했을까? 그리고 1975년 4월 30일 베트남 통일은 가능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베트남 역사에서 호찌민 주석의 영향력과 역할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합니다.
10세기에 남한(南漢)의 군사를 막아내고 독립을 쟁취한 응오꾸옌 장군, 11세기에 송나라 군사를 물리친 리트엉끼엣 장군, 13세기에 몽골의 침략을 막아낸 쩐흥다오 장군, 15세기에 명나라 군사를 물리치고 레 왕조를 세운 레러이 장군, 18세기에 청나라의 침략을 막아낸 응우옌후에 장군과 함께 호찌민 주석은 베트남 역사에 영원히 남을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을 것입니다.
▲ 호찌민 주석의 작품을 번역하고 호 주석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무엇입니까? 호찌민 주석 연구 과정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공유해 주신다면?
= 호찌민 주석의 작품을 번역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호찌민 주석의 애국, 애민, 애족 사상이었습니다.
호찌민 주석은 독립운동을 위해서 30년간이나 해외에서 활동했습니다. 30년간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추위와 배고픔을 겪으며 수많은 고생을 했고, 생계를 위해 다양한 직업도 가져 보았고, 중국에서 380일간 감옥생활도 했습니다.
중국 광시(廣西)성에서 감옥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자유와 독립을 빼앗긴 조국을 걱정하는 애국정신이 감명 깊었습니다.
또한 사후에 자신을 화장해 줄 것을 유언으로 남겼던 호찌민 주석의 애민사상이 아주 감명 깊었습니다. 만약 자신의 묘를 크게 만들면 농사지을 땅이 줄어들어 농민들이 가난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화장해 줄 것을 유언으로 남긴 것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추억이라면 2003년에 베트남친선협회총연합회(VUFO) 주관으로 하노이에서 한 번, 호찌민시 베한친선협회 주관으로 호찌민시에서 한 번, 모두 2번에 걸쳐 호찌민 주석의 ‘옥중일기’ 출판 기념회를 개최한 것이 가슴속에 깊게 남아있습니다.
이는 한국 사람이 베트남에서 최초로 개최한 출판기념회였습니다.
▲ 최근에 베트남이 남부베트남 해방 및 통일 50주년 기념식을 개최했습니다. 교수님은 호찌민 사상에서 베트남의 민족 해방과 국가 통일 위업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핵심 요인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금년은 호찌민 주석이 1945년 8월혁명을 성공하고 나서 그해 9월 2일 독립을 선언하고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선포한 지 8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리고 남부베트남 해방 및 통일 50주년을 맞는 아주 뜻깊은 해입니다. 기념행사를 보니 베트남 국민들의 자신감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볼 수 있었습니다.
호찌민 주석은 베트남의 민족 해방과 국가 통일 위업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분으로, 호찌민 주석의 위대한 업적의 핵심 요인은 그분의 바다보다 더 깊은 ‘나라사랑’과 ‘민족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 다.
호 주석은 조국과 민족의 통일을 위해 79년 평생을 바쳤던 것입니다. 그분의 탁월한 영도력이 베트남 민족의 단결력을 결집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민을 단결시킨 ‘총화단결’로 프랑스와 미국을 상대로 싸워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의 모든 정치지도자들이 호찌민 주석의 사상을 본받는다면 세계평화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또럼 총비서는 베트남이 도약의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의 정책(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 국민 모두 연 1회 무료 건강검진 실시 등)을 발표했습니다. 베트남이 선진국으로 도약 및 국제 통합시대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호찌민 주석의 핵심사상 가운데 어떤 것들이 베트남 국가 발전을 지속적으로 견인할 수 있는 사상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또럼 총비서는 최근 베트남 '정부 조직 20% 감축'과 '63개 행정구역을 34개로 통폐합‘하면서 1986년 체택한 ‘도이머이’ 개혁‧개방화 정책에 이어 '제2의 도이머이'로 일컬어지는 대규모 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는 베트남 국가의 운명을 결정지을 만큼 중요한 또 하나의 ‘8월 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또럼 총비서는 “달리면서 줄을 서는 정신(tinh thần "vừa chạy vừa xếp hàng)으로 모든 업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라”고 당부하였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들입니다.
호찌민 주석의 가르침 가운데 ‘근검렴정(cần, kiệm, liêm, chính)과 '지공무사(chí công vô tư)’ 정신을 잘 살려 나간다면,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5년까지 베트남은 확실하게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협력관계가 일 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여 무궁히 발전되기를 기원합니다.
한국 최고의 베트남통 안경환 교수 ‘그는 누구인가?’
본지 베트남 편집위원인 안경환(71) 응우옌짜이대학교 대외총장은 충청북도 충주 출신으로 충주고와 한국외대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해병대 중위로 예편했다. 1992년 한-베 수교 이전인 1989년부터 현대종합상사 주재원으로 베트남과 인연을 맺은 안 교수는 베트남 국립호찌민인문사회과학대학교 대학원에서 어문학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한 베트남 외국인 1호 박사로 유명하다. 베트남정부로부터 외국인 최초로 문화공로상과 친선문화진흥공로휘장, 평화우호휘장, 호찌민시로부터 휘호, 응에안성으로부터 호찌민 휘호를 받았다.
특히, 베트남 민족영웅 호찌민 주석의 '옥중일기'와 베트남 문학의 정수인 '쭈옌끼에우' 등 베트남 문학작품을 가장 많이 한국어로 번역하여 소개하여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교류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저명한 학자로 베트남문학회에서 외국인 최초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마오쩌뚱, 저우언라이. 체게바라, 시하누크, 훈센, 수카 르노, 김일성, 카스트로, 오부치 게이조 등과 함께 베트남 정부에서 선정한 전 세계 '베트남의 친구들 410명' 가운데 한 명이다.
2014년 10월 12일에는 1954년 5월 7일 디엔비엔푸 대첩으로 프랑스로부터 하노이를 수복한 60주년 기념으로 '수도 하노이 명예시민'으로 추대된 유일한 한국인이며, 동시에 호찌민시 명예시민이 기도하다. 2017년 11월 20일에는 국립호찌민인문사회과학대학교 개교 60주년 기념식에서 ‘자랑스러운 동문 60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으며, 2018년 12월 베트남정부로부터 우호훈장을 수훈했다. 조선대학교 교수와 한국베트남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정년퇴직 후 베트남의 KGS국제학교(초‧중‧고교 과정) 이사장을 역임했다. 조선대학교 교수로 재직 당시인 2008년에 국립호찌민시 인문사회과학대학교와 합작으로 세종한국어학당(세종학당 전신)을 세계 최초로 설립하여 한국어를 최초로 해외에 수출한 장본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