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벽화 지우개’ 프로젝트로 도시경관 재설계의 새로운 이정표 제시
- ‘덧칠이 아닌 제거’라는 과감한 전환, 오래된 벽화의 퇴색된 역사 지우고, 단색 배색 조합
- 주민 참여와 지속 관리 시스템으로 확장, 구 자체 아이디어에서 출발....지역 정체성과 함께 성장하는 도시 경관 관리 모델 제시
[한국지방정부신문=김미숙 기자] 서울 도봉구(구청장 오언석)가 단순한 페인트 보강이나 리터칭 수준을 넘어, 벽화가 만들어냈던 과거의 이미지와 색채를 완전히 새로 고쳐 도시 전반의 통일감을 회복하겠다는 과감한 발상 전환을 시작했다.
도봉구는 2025년 6월, 전국 지방정부 최초로 ‘노후 벽화 색채 정비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고, 이달부터 관내 25개 노후 벽화를 대상으로 하는 ‘우리동네 벽화 지우개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
오언석 도봉구청장은 “이번 사업은 단발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시 경관 관리 체계를 주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지속 가능한 모델로 확장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덧칠 대신 지우세요” 발상의 전환, 색채 정비 가이드라인 탄생
기존 벽화가 도시재생 및 마을 미화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되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색이 바래고 페인트가 벗겨져 오히려 미관을 해치는 ‘반쪽짜리 예술’로 전락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봉구는 과감하게 ‘지우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도봉구 관계자는 “기존 노후 벽화에 단순히 겹겹이 덧칠하는 방식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색이 바래고 들뜨는 문제가 반복된다”며, “오히려 벽화를 말끔히 지운 뒤 단색 배색 계획에 따라 깔끔하고 정돈된 새로운 표면을 만드는 것이 장기적으로 도시 경관을 유지하는 데 훨씬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벽화가 지역 주민 스스로 만든 ‘추억의 캔버스’라는 긍정적 가치는 존중하되, 이제는 지워진 바탕 위에 도봉구만의 환경색채 기준을 입혀 도시 전체가 하나의 연속된 조형미를 갖추도록 설계한 것이다.
도시 공간 유형·벽면 규모·주변 환경 종합 분석, 색채 배합...치밀한 '단색 사용' 계획
도봉구가 이번 가이드라인을 수립하며 가장 먼저 진행한 일은 ‘도시 공간의 유형별 특성, 벽면의 규모, 주변 물리적 환경’을 세밀하게 분석한 것이었다.
과도한 색채 대비나 산만한 디자인이 아닌, 자연 요소·건축물·도로·가로수 등 주변 맥락과 조화를 이루는 환경색채 기준을 세우기 위해, 구청 도시정비과와 색채 디자인 전문가들이 수개월에 걸쳐 현장 답사를 실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구는 벽면 전체를 채울 배경색(주조색)과 그 위에 포인트가 될 보조색·강조색의 비율을 각각 구체적으로 규정했다.
구체적으로는 벽 면적이 10㎡ 이상인 대형 벽화의 경우, 주조색을 전체 면적의 60%, 보조색 30%, 강조색 10% 정도로 설정해 지나치게 단조롭거나, 색이 튀어 주변과 불협화음을 이루는 일을 방지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벽화(10㎡ 미만)에는 주조색을 70~80% 수준으로 높이고, 보조색·강조색을 최소화해 한결 더 차분한 인상을 주도록 설계했다.
또한 구체적인 색채 팔레트는 주변 가로수의 계절별 색 변화, 인근 건축물 외벽의 재질과 톤, 인접 상가·주택의 외관 컬러 등을 고려해 최종안이 확정됐다. 이를 통해 ‘도봉구만의 통일된 색채 아이덴티티’가 자연스레 형성되도록 한 것이 가이드라인의 핵심이다.
단순 제거가 아닌, 참여와 설명 함께한 정비 현장 풍경
도봉구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6월부터 우선 25개소의 벽화를 정비 대상으로 선정했다.
과거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그렸거나, 마을 예술가가 손수 작업한 벽화들이지만, 이제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공유된 색채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단계별로 지워지고 새롭게 칠해지는 과정을 거친다.
특히 이번 사업은 단순히 구청 주도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과정을 중요시했다.
먼저 각 동 주민센터와 협력해 해당 벽화가 위치한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사전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는 노후 벽화가 도시 이미지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예: 색이 바랜 벽화가 ‘흉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과, 가이드라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통일된 경관 효과, 그리고 새로운 배경색이 지역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방식 등을 상세히 안내했다.
그 결과 많은 주민들이 “오히려 예전 벽화가 사라진 뒤 새로운 색채가 된 모습을 보니 구역 전체가 한결 세련돼 보인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현장 작업은 먼저 벽화 위에 남은 페인트를 고압 세척 장비로 말끔히 제거한 뒤, 부식된 콘크리트나 시멘트 틈새를 보수하는 단계로 시작된다.
이후 규정된 배경색(주조색)을 전체 면적의 60~80% 정도 칠하고, 일정 비율에 따라 보조색과 강조색을 포인트로 입히는 순서로 진행한다.
작업 현장에는 미술 전공 대학생과 지역 주민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참여해 철저한 안전 교육과 색채 매뉴얼 교육을 받은 뒤, 실제 페인팅 작업을 돕는다. 이러한 협업 구조는 단발성 ‘지우개’ 사업이 아닌, 앞으로도 주민들 스스로 관리하고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전국적 도시 경관 관리 새로운 모델 제시, ‘벽화 정비 표준 모델’ 자리매김 목표
도봉구가 수립한 ‘노후 벽화 색채 정비 가이드라인’은 단지 구 내부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전국 지방정부 중 최초로 ‘지우기’를 전면에 내세운만큼, 타 도시에서도 벽화 보존과 재정비를 고민하는 담당자들이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열린 서울시·경기도 공동 세미나에서는 도봉구 사례가 대표 벤치마킹 사례로 소개되었으며, 특히 국내 유명 디자인 기관에서는 “도봉구의 통일된 색채 비전과 주민 참여형 운영 모델은 다른 지자체도 충분히 응용할 수 있는 혁신적 접근”이라고 평가했다.
향후 몇 년간 도봉구는 25개소를 시작으로, 노후 벽화가 있는 공공 건축물, 지하철역 외벽, 어린이 보호 구역 인근 등으로 사업 범위를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타 지자체에 배포한 ‘색채 정비 가이드라인 매뉴얼’을 보완·발전시켜, 전국적인 ‘벽화 정비 표준 모델’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지속 가능한 경관 관리로 진화 ‘벽화 지우개’ 프로젝트 미래 청사진
도봉구가 이번 가이드라인을 발판 삼아 그리는 미래 청사진은 단순히 예산을 투입해 벽화만 지우고 다시 칠하는 것이 아니다.
구는 2025년 하반기 중 가이드라인을 주민들에게 전면 공개한 뒤, 각 동 주민자치위원회와 협력해 ‘벽화 모니터링단’을 구성할 계획이다. 이 모니터링단은 정기적으로 경관 훼손 여부를 점검하고, 필요 시 재정비 시기를 제안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우리동네 벽화 지우개’ 사업은 단순히 외벽이 깔끔해지는 것을 넘어, 도봉구만의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전략적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과거 여러 도시에서 도입했던 ‘벽화 그리기 대회’나 ‘거리 미술 프로젝트’와 달리, ‘지우고 재색칠하기’ 방식은 공간의 과거 이력을 존중하면서도 미래를 위한 깔끔한 배경을 마련하는 차별적 접근이다.
이를 통해 도봉구 전역은 통일된 톤앤매너(tone & manner)를 갖춘 ‘색채 지침도시’로 탈바꿈하고, 외부 방문객과 주민 모두에게 세련된 인상을 심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도봉구 관계자는 “이번 가이드라인은 오래된 벽화를 일시에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새로운 색채를 선택하고 유지·관리하는 주체’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닦는 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는 이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공공기관, 학교, 상가·주택가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색채 조경 프로젝트를 확대해 나갈 것”라고 말했다.
이처럼 낡은 벽화 위에 새로운 바탕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 도봉구는 ‘색채로 잇는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하며, 장기적으로는 서울 25개 구 중에서도 유독 정돈되고 세련된 도시 경관을 갖춘 모범 사례로 성장해나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