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일 부산서 (사)안용복장군기념사업회 주최, '대한민국 광복 80주년-베트남 독립 80주년' 기념일 맞아 개최, 전국 각계 주요인사 100여 명 참석 큰 관심 표명
- 베트남 응우옌짜이대학교 안경환 총장 ‘베트남 동해(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배경 특강, 베트남 정부 비상한 관심...한국 동해 독도와 베트남 동해(남중국해)의 ‘다른듯 닮음꼴’
- 울릉도·독도의 해로(海路) 개척자, 일본의 침탈 항복문서 받아낸 울릉도·독도 수호신 ‘안용복 장군’의 역사적 재평가론 대두
[한국지방정부신문=정양기, 이명선 기자] 국내 최초로 ‘베트남 동해 사진전’이 열려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동해의 독도와 베트남 동해(남중국해)의 영유권 논쟁이 역사적·지리적 닮은꼴로 주목받고 있다.
올해는 대한민국 광복 80주년이자 베트남 독립기념 80주년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공유하고 있다. 한국은 1945년 8월 15일, 38년간의 일본 식민지배로부터 해방, 독립을 쟁취하였고, 베트남은 호찌민이 이끌었던 '8월혁명'을 통해 1945년 8월 30일 응우옌왕조의 바오다이 황제를 축출하고 9월 2일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수립, 독립을 선포한 역사적인 해이다.
이와 관련하여 베트남 ‘8월혁명과 독립' 80주년(1945-2025)을 기념하기 위해 (사)안용복장군기념사업회(회장 이수자)가 주최하고 부산광역시,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 울릉군, (재)독도재단 등 13개 기관·단체 후원으로 개최된 이번 전시에는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경북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사회단체, 언론인, 베트남 연구가, 주한 베트남교민 등 각계 주요인사 100여 명이 참석해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베트남 응우옌짜이대학교 안경환 총장이 ‘베트남 동해(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주제로 특별 강연을 펼쳐 베트남 정부와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번 '한-베트남 동해사진전'은 공간조형 아티스트인 김용만 작가가 제작한 전통애등(傳統愛燈)에 베트남 동해 사진을 담아 2일 오후 2시부터 부산 수영구 수영동에 있는 안용복장군의 사당 수강사(守疆祠)에서 개최되었다.
사진전 개막식을 마치고 이어진 한국인 유일의 하노이·호찌민시 명예시민인 베트남 응우옌짜이대학교 안경환 총장의 '베트남 동해(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에 대한 특강이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안 총장은 특강을 통해 필리핀-중국 간 남중국해 분쟁과 관련하여 중국의 '남해 9단설'에 대한 2016년 7월12일자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기각판결 이후 남중국해의 복잡한 정세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이어 안 총장은 중재재판소의 판결을 중국이 불이행하고 심지어 긴장을 고조시키는 군사화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남중국해 해상에서 영해영유권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분쟁 당사국들은 중재재판소의 판결을 존중할 것, 국제법의 규정을 준수할 것, 그리고 남중국해에서의 분쟁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나갈 것"을 촉구했다.
이날 (사)안용복장군기념사업회 상임이사이며 공간조형 아티스트인 김용만 작가는 해양 생태계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국의 행동을 자세히 소개했다.
특히 중국의 인공섬 조성 사진, 호앙사군도 및 쯔엉사군도의 암초 사진, 중국의 군사 기지화 활동과 이러한 활동들이 지역의 해양생태환경과 자유항행, 지역 안보에 끼친 영향을 보여주는 총 40여 점의 사진을 전통애등(傳統愛燈)에 담아 전시했다.
국내에서 예술작가가 베트남 동해 사진전을 개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부산포럼 상임대표인 조관홍 전 동아대 교수는“부산에 베트남총영사관 개관에 즈음하여, 베트남 8월혁명 80주년 기념 한-베 동해사진전 개최는 향후 부산과 베트남은 물론 한국과 베트남의 교류협력 관계 증진에 크게 기여 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울릉도·독도의 해로(海路) 개척자, 일본의 침탈 항복문서 받아낸 울릉도·독도 수호신 ‘안용복 장군’
울릉도와 독도를 지켜낸 바다의 개척자, 안용복(安龍福·1672~?)은 조선 숙종 시기 동해바다를 향한 굳은 의지와 민족적 자존심을 보여준 인물이다.
그는 본래 부산 동래 출신의 평범한 어부였으나 일본 어민들이 울릉도와 독도를 침범해 나무를 베고 물고기를 잡으며 약탈을 일삼자 분노했다.
당시 조선 숙종 조정은 국경 문제에 소극적이었지만 민간인 어부 안용복은 “조선의 땅을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스스로 행동에 나섰다.
1693년, 그는 울릉도에서 일본 어민들의 침범을 제지하다가 일본에 끌려갔다. 이 사건으로 조선과 일본 사이에 외교 분쟁이 벌어졌으나 결국 조선으로 귀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3년 후인 1696년에 안용복은 다시 울릉도에서 일본 어민을 몰아내며 스스로 배를 몰아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일본 에도 막부와 담판에서 울릉도와 독도가 분명 조선의 영토임을 논리와 역사적 사실을 들어 당당히 주장하여, 결국 일본 측으로부터 조선 영토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항복문서를 받아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러나 조선 숙종의 조정은 이러한 안용복의 행동을 국법 질서를 어긴 행동으로 판단하고 사형을 선고했다. 다행히 당시 영의정 남구만의 요청으로 안용복은 사형에서 유배형으로 감형되었다.
이는 개인의 담대한 결단이 국가 외교를 대신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안용복의 행동은 단순한 해상 투쟁이 아니라 영토 수호의 실천이었다.
그가 개척한 해로(海路)는 조선 어민들이 울릉도와 독도를 드나드는 길을 넓혔으며, 일본의 불법 침탈을 제압한 그의 기록은 오늘날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증명하는 중요한 역사적 사료로 활용되고 있다.
민간인 신분으로서 목숨을 걸고 일본에 맞서 승리를 거둔 안용복장군은 울릉도·독도의 수호신으로 기억되고 있다.
안용복 장군의 일대기는 지금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국가가 침묵할 때, 개인의 용기가 어떻게 역사를 지켜낼 수 있는가? 그가 남긴 발자취는 오늘날 동해의 작은 섬을 지키는 큰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바다 위의 두 갈등의 섬, 한국 동해의 독도와 베트남 동해(남중국해) '다른듯 닮음꼴'
동북아의 동해와 동남아의 남중국해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한국 동해의 독도와 베트남 동해(남중국해)의 호앙사·쯔엉사군도는 묘하게 다른 듯 닮아 있다.
한국 동해의 독도는 대한민국의 최동단 영토로 경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1-37번지이며 우리나라 법적·행정적 관리 체계 안에 분명히 포함돼 있다. 동도는 북위 37도 14분 26초, 동경 131도 52분 10초, 서도는 북위 37도 14분 30초, 동경 131도 51분 54초에 위치한다. 두 섬과 주변 암초를 합친 독도의 총면적은 약 187,554㎡(0.187㎢), 해안선의 길이는 5.4km 정도이며, 경상북도 죽변(울진군 죽변항)에서 약 216km, 포항에서 약 217km, 강릉에서 약 256km, 울릉도에서 약 87.4km 떨어져 있다.
일본이 ‘다케시마(죽도)’라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나 국제법상 영토 주권의 핵심 요소는 ‘실효적 지배’에 있으며 독도는 한국이 경찰력, 행정력, 주민 거주, 시설 운영 등을 통해 완전한 통치권을 행사 중이다. 따라서 독도는 단순한 해양 영토가 아니라 우리 국민과 정부가 지키고 있는 현실적 영토라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
남중국해에서의 영유권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곳은 베트남 동해상에 있는 호앙사 군도(중국명: 西沙 군도-Paracels)와 쯔엉사 군도(중국명: 南沙 군도-Spratly)다. 호앙사 군도는 37개의 섬(동경 111°-113°, 북위 15°45´-17°15´)으로 구성되어 30,000㎢ 해역에 산재되어 있고, 쯔엉사 군도는 147개의 섬(동경 111°30´- 117°20´, 북위 6°30´-12°)으로 구성되어 180,000㎢ 해역에 산재해 있다. 이 곳은 역사적으로 베트남의 영토였다.
두 지역 모두 바다 위 작은 섬과 바위에 불과하지만 국가 간 갈등과 국민적 자존심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독도는 한국인에게 국토 수호의 최전선이다. 일본이 ‘다케시마’라는 이름으로 영유권을 주장할 때마다 한국 사회는 독도를 지켜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확인하곤 한다.
베트남 역시 호앙사·쯔엉사군도를 국가 주권의 상징으로 내세운다. 풍부한 자원과 전략적 위치가 알려지면서 이 군도는 단순한 섬들이 아니라 국가 미래와 정체성을 지탱할 거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양쪽 모두 바다의 길목에 위치한 만큼 경제적·전략적 가치가 크다. 독도는 동해의 중심에서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기준이 되며, 남사군도는 아시아와 중동을 잇는 국제 해상 교통로의 요충지이자 석유와 가스 매장지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두 지역을 둘러싼 갈등의 양상은 크게 다르다. 독도 문제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이의 대립이다. 현재 독도에는 한국의 경찰 경비대가 상주하며 완전한 실효 지배가 이뤄지고 있다. 갈등은 외교적·상징적 차원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반면 호앙사군도와 쯔엉사군도는 훨씬 복잡하다. 역사적으로 베트남의 영토로 알려져 있으나 중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대만까지 7개국이 서로 다른 섬을 점거하거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유는 해저에 매장된 막대한 천연자원과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입니다.
호앙사 군도와 쯔엉사 군도를 포함한 베트남 동해(남중국해)에는 약 300억 톤의 석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천연가스 매장량도 450억 톤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군사 기지와 군함이 오가며 실제적인 긴장이 지속되고 국제 해양법이 직접 적용되는 다자간 분쟁의 전형이 되고 있다.
2016년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가 중국의 ‘남해 9단선’ 주장을 기각했지만 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독도는 한일 양자 관계 속에서 역사와 주권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면, 호앙사군도ㆍ쯔엉사군도는 동남아 전역과 국제 사회를 뒤흔드는 다자 갈등의 중심으로 그 존재감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